GPT는 문맥을 필요로 하는 도구다. 하지만 우리는 말하지 않는 데 익숙하다. 이 글은 고맥락 사회인 한국에서 GPT가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언어, 문화, 교육 방식의 차이가 어떻게 LLM 사용에 영향을 주는지를 짚어본다.
1. 도입 – 말은 했는데, 대화가 안 된다?
GPT를 처음 써보는 사람 중에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말은 했는데, 왜 못 알아듣지?”
“이 정도는 말 안 해도 알지 않나?”
이 반응은 한국에서 특히 자주 보인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말을 줄이는 법, 눈치껏 말하기,
빈칸을 채우는 대화 방식에 익숙하게 자라왔다.
그런데 GPT는 그걸 못 한다.
이 어긋남은 단순히 ‘처음이라서 낯선 것’ 정도가 아니라, 대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2. 고맥락 사회, 그리고 고맥락 언어
문화적으로 한국은 ‘고맥락 사회’로 분류된다.
말보다 분위기, 관계, 전제가 더 중요하고,
“말 안 해도 알아야지”가 자연스럽게 통하는 사회다.
그리고 그 문화는 한국어라는 언어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다.
- 주어는 자주 생략된다.
- 하고 싶은 말을 돌려서 말한다.
- 단어보다 상황과 분위기가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고맥락 사회 + 고맥락 언어
우리는 이 조합 안에서 자라왔다.
그래서 많은 말을 굳이 설명하지 않고도, 서로를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3. GPT는 눈치가 없다
GPT는 눈치가 없다. 말속에 숨어 있는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다.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는 통하지 않는다.
왜냐면 GPT는 언어를 이해하는 기계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언어를 이해하는 ‘척’ 하는 확률적 계산기다.
우리가 쓴 문장을 보고,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를 확률적으로 예측해 생성할 뿐이다.
그래서, 말하지 않은 맥락은 GPT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설명을 생략하면, 그냥 생략된 채로 받아들인다.
4. 말하기를 줄이는 사회, GPT와 멀어진 사람들
우리는 말하지 않고도 통하는 데 익숙하다.
단지 문화나 언어의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습관도 우리를 말 줄이게 만들었다.
- 빨리빨리 문화: 말은 짧게, 핵심만 말하라
- 정답 중심 교육: 질문보다는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토론보다 암기: 설명보다 요약이 우선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생각을 천천히 설명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GPT에게 자연스럽게 말 걸기도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GPT는 단순한 검색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GPT는 LLM(대규모 언어 모델)이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건 쉽게 말해,
사람이 쓴 글 수십억 개를 학습한 뒤, ‘이런 문장이 오면 다음엔 이런 말이 오겠구나’를 계산해 내는 구조다.
즉, GPT는 우리가 입력한 말 안에 ‘힌트’가 많을수록 더 똑똑한 답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 힌트를 자꾸 생략한다.
우리에겐 그게 더 자연스러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GPT에게 말을 거는 일은,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단 ‘생각을 꺼내어 설명하는 습관’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습관은, 지금의 우리 말하기 문화와 꽤 먼 거리에 있다.
5. 그래서 GPT는 어색하게 느껴진다
GPT는 의외로 자주 되묻는다.
"어떤 방식으로 도와드릴까요?"
"이걸 통해 무엇을 하시려는 건가요?"
"어떤 톤과 분위기를 원하시나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바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익숙하지도 않고, 평소에 그렇게 말해본 적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GPT는 맥락이 주어져야 제대로 반응하는 도구다.
그런데 우리는 맥락 없이도 통했던 대화 방식에 익숙하다.
이 충돌은 단순한 ‘AI 사용 미숙’이 아니라,
우리의 말하기 방식과 GPT의 작동 방식 사이의 구조적인 차이에서 온다.
6. 마무리 – GPT를 잘 쓴다는 건, 생각을 꺼내는 연습이다
우리는 원래 문맥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땐 자연스럽게 상황, 배경, 목적을 함께 이야기한다.
- 어린아이에게 설명할 때
- 후배나 동료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방향을 알려줄 때
그럴 때 우리는 단어보다 문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상대가 제대로 이해하려면 배경과 의도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GPT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금까지는 그걸 글로 차분히 설명해본 경험이 적었을 뿐이다.
GPT를 잘 쓴다는 건,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GPT에게 상황을 먼저 설명하고, 문맥을 충분히 알려준 뒤 하나씩 단계적으로 질문을 던져보는 연습에 더 가깝다. 글을 쓰거나 정보를 요약할 때, 단순 검색이 아니라 깊이 있는 결과를 원한다면 이 방식은 훨씬 효과적이다.
결국 GPT와 잘 대화하는 방법은, 우리가 원래 잘하던 설명 방식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꺼내 쓰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래 잘하던 설명 방식'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꺼내 쓰는 일'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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